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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집 서평/포에지], 산 속에서 만나는 삶의 심연
산 속에서 만나는 삶의 심연
― 이향지의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김 진 수 (문학평론가)
작품 수로 치자면 100여편을 훨씬 웃도는 이 두툼한 시집에는 특별히 '산시집'(山詩集)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있다. 《구절리 바람소리》이후 6년만에 나온 시인의 이 세 번째 시집은 "열두 해 동안 써온 山詩를 한데 묶"(〈자서〉)어 놓은 시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물어도 되겠다. '산과 시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고 말이다. 시인은 시집의 머리말에다 "詩는 나의 종교이며, 山은 나의 예배당"이라고 적었다.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은 시인이 지니고 있는, 시에 대한 거의 종교적 신심에 가까운 믿음을, 산을 매개로 하여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겠다. 따라서 시집의 시들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하나의 기도문처럼 경건한 언어들에 의해 축조되고 있으며, 이 경건한 신심이 만들어낸 간결하고도 명징한 은유가 이 시집의 장점으로 자리한다.
시인은 우선 "떠오르는 태양에 어둠을 말리"(〈태백산 천제단〉)기 위해 산행을 한다고 노래한다. 태양 숭배족의 일원인 시인에게 산은 무엇보다도 어둠을 말리는 곳이다. 물론 저 태양의 빛을 향한 산행의 과정에 기나긴 육신의 고통과 인내가 동반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지난한 이 고통이야말로 동시에 육신의 살아있음을, 삶의 활력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육신의 고통은 오히려 생의 환희로 변화된다. 저 '떠오르는 태양'이란 사실상 이 생의 활력과 환희에 대한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애초에 태양은 산 위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산행의 과정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저 고통과 환희의 과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떠한 방도도 없어 보인다. 시인은 "내가 선택한 길을 껴안고 더 사랑하기로 한다"(〈선자령 가는 길〉)고 적는다. 시집은 이렇듯 저 태양의 빛이 담보하는 생의 환희와 어둠에 젖은 육신의 고통이 서로 교차하면서 길항하는 하나의 직물이 된다.
산은 그늘진 어둠이자 동시에 그 어둠 자체로서 빛이 되는 존재이다. 산은 현재의 그늘을 미래의 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이다. 그래서 저 산은 시인에게 끊임없이 "포기 마라!"(〈고루포기산〉)고 권유한다. 왜냐하면 저 산은 육신의 고통이 생의 환희로 전화될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과 낙관 속에서 "내 길은 어둠으로 왔으나 빛으로 간다"(〈가을 오대산〉)는 신념이 출현한다. 이렇듯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하나의 예배당으로서의 산은 육신을 지닌 인간 삶 전체의 상징이 된다. 물론 시인은 산행의 고통 속에서 언제나 "너 지금 가는 길이 너 지금 꼭 가야하는 길인가"(〈두타행〉)라는 의문을 그림자처럼 품고 있다. 환희는 미래에 속해 있지만, 고통은 언제나 현재의 사건이기에.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꼭 가야하는 길로 삼은 자는 운명을 만드는 자이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언제나 질문으로 돌아"올 뿐이다. 아마도 저 질문과 대답 속에 삶의 어떤 심연이 가로놓여 있을 지도 모른다.
*《포에지》2001년 여름호, '계절시집평'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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