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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산시집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서평 / 山詩集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생의 근원을 찾아가는 힘든 노정(路程)


                                                 이경림 (시인)

      미륵산아, 나는, 너에게
      털어놓을 추억이 없다.
      너무 많아서 없다 멀어서 없다.
         ―<미륵산>부분.                  

이향지의 세 번째 시집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나남출판刊)을 읽는다. 그의 힘든 산행에 따라나서 본다. 분명 힘든 노정(路程)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발뒤꿈치가 들리고 몸이 들썩거린다. 나는 춤추듯 그가 찾아가는 생의 근원 속으로 고향의 <미륵산> 속으로 그와 함께 미끄러져 들어간다. 온갖 추억의 풀꽃들이 저마다 환하게 불을 켜들고 서 있다. 거기에는 일제시대 때 무능하던 아버지, 그 가난한 어린 날을 떠오르게 한 '자주물봉선'처럼 추억들만 불을 켜들고 있는 게 아니다. 바위, 돌, 산 이름 하나 하나까지 추억이며 길이며 자식이다. 생(生)의 근원이다.
그의 시에는 그가 찾아가던 금강산 길에서 마주친 어느 초병의 경례 같은, 내가 잊고 있던 그러나 나를 나이게 하는 근원인, 생의 자식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숨어 있다. 그런 초월적 온기를 얻기까지의 그의 고통과 아픔이 숨어 있다. 그것은 생(生)의 백두대간을 거지반 밟아 본 자의 진중한 아픔이며 수선스럽지 않은, 그윽한 고통의 노래이다. 이제 그는 달이 뜨는 광경을 보고도

    네가, 네가, 오르는구나
    해바라기 눈썹 달,
    동백꽃 다 진 날에 해 무리 글썽이며 오르는구나
    쇠락의 길로 들었으나 중흥의 길로 나가리라
    ―<월출산>부분.

하고 슬픔과 연민의 눈길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에는 다시 '중흥의 달'이 떠오르는 법이니 절망하지 말라고 다독일 만큼 생의 복닥거리는 많은 것들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는 지나간 고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자신을 고추 세우는 등뼈가 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고통스럽게 한 힘의 주체까지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바람에 허리 휘어 바람 끝에 섰을 지라도
    제 의지로 서 있는 것은 저리도 아름답다.
    갈대는 바람을 꺽지 않는다.
    누군가의 옷자락에 쓸리며 꺾인
    변두리의 슬픔에 내 길이 닿았을 때
    겨울 갈대는 꽃으로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먼지 속에서도 빛을 만나면 제 빛을 녹여
    겨울 갈대의 뿌리에 연둣빛 반란의 무리를 전하곤 하는
    차디찬 눈구렁에 섰을 지라도,
    갈대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전문.

 근사하지 않은가? 갈대는 절대로 바람을 꺾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그의 말이! 그런데 그 당연지언(當然之言)이 왜 그리 눈물겨운가?
그러고 보면 그의 산행은 그 선한, 아픈, 꼬장꼬장한 갈대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며, 그것은 곧 자신을 찾아가는 멀고 험한 길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그 여정을 고통스럽지 않게 '그냥 가'려고 한다. 기왕이면 '노고지리 한 마리 전령으로 띄우고/춤추듯 꿈꾸듯 그리로 가'(수렴동詩'부분)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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