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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산시집<<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발문
유정한 길 무심한 산
황 현 산 (문학평론가)
이향지 시인의 산시집은 아름다운 그만큼 고통스러운 시집이다. 이 100편이 훨씬 넘는 시편들은 한결같이 이 땅의 한 육체가 이 땅의 자연과 부딪치고 교섭해 온 역사의 실록이다. 이것은 시로 그린 조국산하의 혈맥도이며, 낯선 열기로 뜨거워진 몸이 물과 흙과 바람으로 연주한 고통과 환희의 노래이다.
이제 벌써 중년을 넘긴 이 '놀라운 여자'의 열정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시인은 자신의 山行을 두고 '종잇장처럼 압착되었던' 한 여자의 열망이 다시 몸의 부피를 얻는 구원의 詩行이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유명한 동시 작가이며 동요 작곡자였던 윤극영의 며느리이자 개인비서였다는 사실을 밝혀 두는 것이 좋겠다. 그녀는 이 대가의 그늘을 마침내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신열을 앓는 몸이 갑자기 벌판에 서 있었다. 그녀는 처음 지팡이에 의지하여 산을 향해 때어놓았던 발길을 끝내 멈추지 않았다. 500미터가 넘는 남한의 모든 산을 거의 다 올랐으며, 강줄기와 정맥을 모두 훑었다. 한중 국경과 한로 국경을 더듬어 남한 사람이 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그녀는 발자국을 찍었다. 백두산을 세 번 오르고 금강산을 두 번 찾아갔다.
백두산과 금강산 사이에는 우리가 오를 수 없는 산맥이 있다. 그녀는 백두대간의 이 북쪽 부분을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종주했다. 이미 이런저런 지면에 산행기를 기고하고 있던 그녀는 등산전문월간잡지 {山]지에 가상 종주기 {북한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를 세 해에 걸쳐 연재한 것이다. 북한과 구소련에서 발간한 지도, 고금의 각종 산행기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실제로 그 산악을 가로질렀던 것은 그녀의 육체이며 심혼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등산로의 설명이 아니었다. 그녀는 산부리와 계곡에 관해 자상하게 서술했으며, 물빛과 토질을 살폈다. 바위틈에 피어 있는 들꽃들, 거기서 듣는 산새 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산길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고 있었다. 한 달 분의 연재를 끝내는 날이면, 하루 종일 바윗길을 걸어간 것처럼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 올랐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그녀는 자신이 올랐던 산들과 마찬가지로 갈 수 없는 산에도 몸을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산시집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은 이향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 특별한 주제 내지는 소제에 의해 앞의 시집들과 구별되지만 그 시적 상태와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서는 동일한 맥을 잇고 있다. 그녀는 늘 자연을 우의적 상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육체가 그 상징체계 속에 깃들 자리를 가늠한다. 그러나 현실인 몸이 은유인 자연 속에 포근하게 안기는 일은 드물다. 어느 몸에나 몸에는 근심걱정이 있고 산천은 무심하여 은유는 깨어진다. 그녀는 슬퍼하거나 놀래지 않는다. 그녀는 철 없는 소녀처럼 명랑한 얼굴을 가장하고 온갖 목소리로 어조를 바꾸어 말을 걸며 산천이 언젠가는 대답하리라고 믿기라도 하는 듯이 내쳐 걸어간다. "허공보다 길을 더 사랑할 때"는 이향지 시인이 이 산시집을 위해 처음에 계획했던 제목이다. 산과 들이 은유의 허공이 되기를 실제로는 그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이다. 산길은 그녀가 쉬는 자리도 아니며 지혜의 자리도 아니다. 그녀는 풍경 속에 파묻혀 명상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안온한 은유의 지혜에 감싸일 것을 두려워하며 한 육체가 저 거대한 물질의 덩어리에 지불해야 했던 모든 노고의 기억을 그 경쾌한 시어로 계산하여 마음 속에 저장한다. 육중한 자연이 육체 속에 남기는 흔적은 그렇게 그녀가 쓰는 시어의 물리적 감수성을 만들어 낸다.
이향지 시인이 시로 산들을 만나는 계기는 여러 가지다. 우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있다. [선자령 가는 길]은 "길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끝나리라"는 염려와 함께 "길 안에서의 흔들림/왼쪽으로 굽은 길에서 오른쪽으로 쏠리는 처절한 균형감각"을 말하는데, 이 균형감각은 물론 균형감각이 아닐뿐더러 그 반대이다. 시인은 자신을 길 밖으로 내팽개치려하는 산의 박대 속에서 오히려 정신이 집중되고 정화되는 기회를 본다. 시인은 산이 쉽게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정열이 짝사랑에 방불하다는 것을 안다.
바람 끝에서 먼 눈 파는 다람쥐바위는 모를 거라
삐뚤빼뚤 돌아앉은 오봉은 머릿돌 무거워 모를 거라
비 온 뒷날 쇠줄을 타거나
눈 깊은 날 뒷등을 타거나
쇠귀고개 찾아가기 바쁜 바람은
신선대 소나무 옆 여자 둘을 모를 거라 ([도봉산 포대능선] 부분)
문제는 산의 믿음을 얻는 것이며, "사람을 보아도 날아가지 않는 산새 한 마리 / 두근거리는 신뢰를 발견할 때까지"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다. 그 순간이 오면 시인은 인문주의자가 된다. 시인은 그 산에 깃을 쳤던 사람들의 역사를 묻고, 풍수지리학적 형국을 점검한다. 죽엽산에서도, 곰배령에서도, 동악산에서도, 산은 자주 한 척의 배가 된다. 배는 늘 움직이게 마련이니 시인은 자신의 걸음보다 더 멀리 간다.
그렇다고 시인이 늘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장죽을 문 할아버지 앞의 어린 소녀처럼 때로는 응석을 부린다.
내리막佛을 굴리고나니
평지佛을 만났고나
胎室은 멀어졌고 洗心亭은 찾아야지
중생으로 목욕하고
중생을 도로 껴입고 보니
법주사 木魚는 佛귀에만 우는지 ([佛짐을 지고 木魚를 보다])
이 응석은 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정성이며, 산이 어떤 태도를 취해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뜻이다. 산꾼의 도리라면 그것은 한 걸음씩 타박타박 발을 옮겨 놓는 것이며, 시인의 도리라면 그것은 실속 있는 말을 얻어내어 그 산에 바치는 것이며, 그래서 산을 하나의 인격으로 받드는 것이다. 산의 인격이라고 해서 신비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걷는 사람의 감정상태, 다리에 남아 있는 힘의 양, 산길에서 조우한 사람들의 인상, 어깨에 걸리는 배낭의 무게, 두고 온 집에 대한 걱정, 그것들이 모두 산의 표정을 만들어 내며, 표정은 늘 변한다. 사람의 크기에 맞춰 산도 그만한 사람이 된다. 그러니 산의 편에서 끝내 기척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전히 문제는 걷는 사람의 마음 자세이지만, 물봉선·원추리·며느리밥풀꽃 같은 풀꽃들이 보이고 산새 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기척을 따라서이다. 그리고 아마도 산 이름 하나하나가 특별한 모양세를 갖추는 것도 이 기척 안에서의 일일 것이다. 이 시인 산꾼에게는 때로 산의 이름이 하루 산길의 운명을 결정한다. 고루포기산은 "포기포기 발빠진 자국마다" 반짝이는 말로 "포기 마라!" 명령한다. "민주산? 주민산? 민주주의산?" - 민주지산은 제 이름을 설명하려는 사람에게 갖은 말을 다 동원하게 한다. 두타산은 거기 찾아가는 기차를 "두타두타..." 울게 하고, 토천은 시인에게 몇 마리 산토끼를 쫒게 한다. 수락산에서는 "수락! 수락!" 땀방울이 떨어졌다 되솟는다.
불바라기재엔 불이 없고
동자꽃 몇 송이,
금대봉엔 금이 없고
쌓다 버린 돌탑,
비단봉엔 비단 없고
비구름 윙윙대는 선바위,
매봉산엔 매가 없고
배추밭 초원... ([매봉산 부근] 부분)
이것은 말 장난이 아니다. 고단한 육체와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말의 호흡이다.
그러나 산이 인격일 때, 그것은 상처 받고 고뇌하는 한 존재일 수도 있다. 탄광촌이 황폐해질 때 산도 함께 폐허가 되며, 무참한 발길에 시달리는 백운대는 "안 풀리는 구름 덩어릴 이고 서 있다". 한라산 분화구에는 등산객들을 단속하는 스피커 소리 요란하다. 어디 그뿐인가. 조국의 산야는 허리가 꺾여 있다. 올라간 산보다 더 많은 산은 갈 수 없는 산이다. [눈 덮인 능선의 새]에서는 한북정맥을 넘고 넘으며, "북녘으로 안부새를 날리지만" 새는 "지척을 날다 돌아와 부리 박고 운다". 등산길은 자주 "참호를 건너는 길"이다. [文殊山이 曰曰曰]에서 문수산은 "명분의 말, 이념의 말, 실리의 말, 주체의 말 / 듣거나 말거나 그런 말"을 소리 높여 외쳐댄다. 물론 대북방송·대남방송 이야기다. 이 시는 의문문으로 끝난다.
건너다보면 낯익은 언덕이 잡힐 듯 가까운데
눈앞의 江心은 돛단배 한 척 없이 터엉 비어있다
北모래 南모래 어디로 흐르다 만나 섬을 이루고
뿌리 없는 것들 받아 안고 바다로 가는 강물 보는가
저 명분과 이념의 말 속에 이에 대한 대답은 없다. 누구도 대답을 염려하지 않는다. 피멍이 든 발바닥과 우리 시대의 시만이 메아리 없는 질문을 되새길 뿐이다.
때로는 위험 가득하고 때로는 아기자기한 기쁨이 있어도, 그 긴 도정을 또 긴 눈으로 훑어볼 때 산길은 한사코 무심하다. 그러나 무심은 바위 같거나 강철 같은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한거슥' 안고 가는 감정의 가닥잡기 어려움이며, 그리움의 한량없음이다. 그래서 이향지 시인의 산시집은 마음 속에 지도를 그리며 읽어야 하고, 그 지도를 지우고 다시 읽어야 한다.
*2001년 <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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