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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4/12(목) 00:52 (MSIE5.0,Windows98) 211.218.204.6 1024x768
[이 달의 시], 바다 밖에서의 목욕  

현대시 하이라이트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중에서


                                                               이 형 권 (문학평론가, 충남대교수)

시인의 눈이 외형적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 세계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이향지의 <바다 밖에서의 목욕>은 탈일상의 꿈을 간직하고 살지만 결국은 건조한 일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삶의 비극적 원질을 밝힌다.


    목욕을 하고 있으면 먼바다. 등을 밀어준다 먼바다가 등을 밀 동안 나는 손등. 문지른다 물장구치는 불빛 속에 쪼그리고 앉아 손등. 문지르고 있으면 따뜻한 물. 차 오른다 거꾸로 서서 신음하며 미로를 통과한 물. 머리에 계속 쏟아진다 내 머리에 계속 쏟아지는 물은 맑고 투명한 탯줄. 나는 투명한 탯줄 끝에 전신을 매달고 부글거리는 거품. 씻는다 나는 탯줄에 매달린 채 거품. 씻어주고 씻는 자. 미끈거리는 양막. 다 벗고 나서 수도꼭지를 잠그면 끝없이 딸려 나오던 탯줄. 뚝 끊어진다 먼바다는 끊어진 탯줄과 함께 벽. 속에 남는다 나는 끊긴 탯줄. 말라서 떨어질 때까지 타월. 속에 있다 아니다 벽. 속에서는 먼바다가 혼자 태반을 낳고 나는 타월 속에 젖은 배꼽을 남기고 마른 옷. 속으로 들어간다 먼바다는 남은 탯줄. 다시 돌아간다
                      ―전문(현대시. 4월호)


이 시는 일상을 말하되, 그것을 세태적 분위기와 직접 연계 짓지는 않는다. 그저 물줄기의 단속(斷續)적 이미지(마침표의 독특한 사용이 이것의 표현 효과를 돕는다)를 로써 일상의 삭막함과 비일상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여기서 "목욕"은 생명의 공간인 "먼바다"와 이어주는 비일상적 행위로 제시된다. 즉 "먼바다-수도꼭지-머리-배꼽"으로 이어지는 목욕물의 흐름을 생명의 "탯줄"로 상상한다. 그러나, "목욕"이 끝난 후 물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태는 반생명적인 일상으로의 복귀를 뜻한다. 시에서, "목욕"이 끝난 뒤 "타월"로 몸을 닦고 "나"가 "다시 돌아가"는 곳은 "마른 옷"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그 메마름의 이미지에 의해 무미건조한 일상의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이 같은 삭막한 일상에의 복귀가 현대인의 비극적 운명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결국 시적 진술은, "목욕"이 끝난 뒤 "탯줄"만을 생명의 "먼 바다"로 "다시 돌아가"게하고, "나"는 삭막한 일상 속에 그대로 남겨둔다.
그러면, 왜 이토록 건조한 일상만 남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또 하나의 물음을 낳는다. 이제까지의 삶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는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현대시'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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