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관련 記事

◎ 2001/4/12(목) 00:34 (MSIE5.0,Windows98) 211.218.204.6 1024x768
[시], 밖에 뭐가 있는가?  


저속도로 위의 이중주

                                                                권 재 용 (당시 대학원생)


이향지의 「밖에 뭐가 있는가?」를 재미있게 읽었다. 빠르고 힘찬 어조 속에 담긴 시인의 태도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사뭇 역동적이다. 화자는 창밖을 보며,  창밖 너머를 본다. <밖>은 '바깥'인 동시에 '너머'이다. <미등들밖에>는 '미등 뿐'이며 동시에 '미등들 너머'이다. <갓길밖에>는 '갓길뿐'이며 '갓길 너머'이다. 시선에 걸리는 것들은 '시선에에 걸리는 것뿐'이며 '시선에 걸리는 것 너머'이다.  '밖에'에의 이중적 사용으로 현실과 현실너머로의 지향 의지는 동시에 종명된다. 동음이의어의 이중 의미를 한 겹으로 포개어서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을 스쳐가며 현실 밖을 그리는 화자다.
정성을 다하여 이어가는 극진한 사랑 또는 사랑으로 사라진 것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자존심은 소중한 것이다. 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선이지만 다시 넘어가야 할 선이다. 무· 배추/돼지· 닭은 누군가에게 팔려 사라진다. 제 꿈을 빨갛게 약화해 낸 장미마저 신문지에 말린 채 다발로 포개져서 간다. 그건 무· 배추/돼지· 닭, 그리고 장미들의 삶만이 아니
다. 그들과 같은 길을 나도 간다. 눈앞에 오는 모든 것, 그 너머를 꿈꾸지만 그들과 함께 간다.

「밖에 뭐가 있는가?」는 제목부터 무언가를 묻는 형식이다. 첫 행의 <밖에 뭐가 있는가?>하는 물음은 마지막 행의 <달랠수록 높이 우는 첼로가 있다>로 답해진다. 마지막 행을 제외한 모든 행은 <밖에>로 끝나고 있다. <밖에>는 <그 뿐이며> 동시에 <그 너머>이다. 한계와 지향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는 화자의 의지가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직 <첼로>이다. 밖에 뭐가 있는가? 미등들밖에, 사랑밖에, 지리멸렬밖에, 가로등밖에, 갓길밖에, 저속도로밖에, 내려다보는밖에, 그것 외에 그것 너머에 또 무엇을 찾고 그래서 만난 것, 그 밖에는 첼로가 있다.
첼로의 현은 화자의 마음일 것이다. 현은 세게 달랠수록 세게 운다. 마음이 그렇다. 위로할수록 위안을 삼을수록 높이 우는 마음, 무언가를 아무리 갈구해도 끝내 채워지지 않고 갈구할수록 더욱 세어지는 마음이 첼로이다. 대형 저음 악기 첼로는 넓고 깊은 마음의 심연인 것이다. 화자의 깊은 심정은 창 밖의 무엇으로 보인 걸까, 아니 창 밖의 무엇을 보고 화자는 첼로를 떠올렸을까. 창 밖의 시선 닿는 것 중 높이 우는 것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구속되는 것도, 해가 뜨고 나면 죽어버리는 것도, 저속도로를 빽빽하게 채운 것들과도 다른 세계의 것이다. 화자는 늙은 호박을 하나 가지고 간다. 옆자리에 호박을 두고 굴러 떨어지지 않게 안전띠에 묶어둔다.
조심스럽게 가다듬은 마음으로 내다보는밖에 호박 같은 달이 하나 떠있다. 곁의 호박을 조심스럽게 간직한 마음으로 하늘 높이에 떠있는 달을 바라본다.
달, 지구밖에, 이 세계밖에 높이 떠서 그리워할수록 높이 우는 달, 그것은 곧 첼로이다. 첼로는 내 마음이고 결국 첼로와 마음과 달은 모두 이 세계밖에  존재하는, 이 세계 밖을 지향하는 화자의식의 지향점인 것이다.

          ( 詩眼 1998년 겨울호 / 독자의 소리4)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