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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4/12(목) 00:31 (MSIE5.0,Windows98) 211.218.204.6 1024x768
[시],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

                                                   황 현 산(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시와 사람』 가을호가 '한국 여성시의 흐름'이라는 주제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거기에 신작시와 '대표시' 한편씩을 발표하고 있는 열다섯 시인, 천양희·강은교·김혜순·김정란·황인숙·정화진·나희덕·이경림·박서원·김언희·이향지·이진명·신현림·김수용·이수명, 그리고 두 편의 비평을 통해 특별히 거론 된 열 시인, 김승희·고정희·최승자·허수경·박라연·최영미·양애경·김상미·최춘희·노혜경, 모두 스물 다섯 여성시인들을 우리는 한 자리에서 만나는데, 지방 문예지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 더욱 기쁘다. 여자와 지방은 같은 힘을, 앞에서 함민복의 시를 두고 이야기했던 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잡지사측에서 밝힌 기획의도와 예의 두 평문의 논지를 살핀다면, 여기서의 여성시는 여성이 쓴 시일뿐만 아니라, 이른 바 여성주의적 특성을 지닌 시들이다. 여성주의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축에는 늘 삶과 권력의 관계가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떠맡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 육아·조리·빨래·청소 등은 그 자체로서는 천한 일이 아니며, 조립 생산공장에서 나사를 박는 일보다 더 불행한 일도 아니다. 삶의 기본이 되고, 그 행복과 가장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이 일에 비해 생산적이건 비생산적이건 다른 모든 일들은 오히려 이 일을 돕고 성사시키기 위한 부차적 가치를 지닐 뿐이다. 그러나 이 귀중한 노동은 어느 남자도 그것을 쉽게 맡으려 하지 않았기에 천한 노동이 되고, 노동도 아닌 족쇄가 되었다. 남자들은 삶의 가치보다 권력의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억압받는 여성의 뒤에서는 그래서 억압받는 삶의 힘이 있다. 권력에 대한 모든 남성적 가치가 깨어지고 그 자리에 삶의 인간적 가치가 들어선다면, 이 족쇄와 수모가 사라질 터인데, 시가 지향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향지는 시 쓰는 일이 밥 푸는 일과 평행하는 일로, 밥그릇에 그 힘을 뿌리까지 퍼담는 일로 규정하고 있다.


 바삐 걷거나 키대로 서서 보면 잘 안 보이는 이 풀꽃들을 더듬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인가 끼니를 맞고, 밥상을 차리고 주걱을 든다.

 나는 이 보라 보라 웃고 잇는 며느리밥풀꽃을 밥처럼 퍼 담을 수가 없다.
 이 꽃들의 연약한 실뿌리들은, 대대로 쌓여 결삭은 솔잎을 거름으로, 질기게도 땅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草心歌 ―며느리밥풀꽃」,부분


(<작가> 1997년 1·2월호, '구질구질한 삶을 위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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