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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6(월) 16:17 (MSIE5.5) 218.155.236.95 1024x768
[현대시작품상 이 달의 추천작], 대해 속의 고깔모자  

[현대시작품상 이 달의 추천작]
           

    대해 속의 고깔모자


    이 향 지


    섬이다 섬으로 왔다
    바람불면 뱃길이 끊기는 하늬바다 작은 섬
    힘센 손이 쥐었다 놓은 것 같은
    대해 속의 고깔모자

    스스로 찾아든 유배지
    자청한 볼모
    바다는 뱃길을 끊고 너그럽게 풀어놓는다

    모자 위의 햇살은 번철 같다
    너무 타서 집적거리지도 않는 에그 프라이

    모자 속의 시계는 느리다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처럼 느릿느릿 간섭하며 간다
    머리카락 끝에서 발톱 끝까지 흡,착,흡,착, 훑으며 간다

    어느 쪽으로 가나 수평선에 갇힐 것이므로
    반짝이는 수면마다 지나간 것들이나 가득히 펼쳐질 것이므로

    트럭 짐칸을 얻어 타고 ?언덕을 넘는 동안이
    풍경과 속도의 궁전이다

    궁전 밖에는 해당화
    해당화 발등에는 뜨거운 몽돌밭
    몽돌밭 위에는 태엽 풀린 시계 하나
    파도의 잔소리 듣고 있다

    아무리 작은 배도 섬보다 덜 흔들리고
    모자보다 신발이 덜 고단하며
    죽음보다 삶이 덜 지루하다

     ― 『문학사상』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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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이 장 욱 시인


섬

 섬이다. 섬으로 왔다.
 이 첫 행에는 섬과 그녀의 관계가 고요히 스며있다. 섬이다, 라는 첫 문장은 섬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섬을 발견한 자의 시선만을 올올이 보여준다. 그 시선은 반가움으로 가득하다.
 섬으로 왔다, 라는 두 번째 문장의 술어는 '갔다'가 아니라 '왔다'이다. 그녀는 섬의 바깥에서 섬을 방문한 자의 시선이 아니라, 섬을 떠나 있다가 홀연히 귀향한자의 시선으로 말한다. 나에게 그것은 '돌아왔다'처럼 읽힌다. 그녀는 다시 섬의 안에 있다.
 이 시선에 의해, 섬과 섬을 이루는 풍경들은 이제 부드럽고 경쾌한 은유로 변주된다. 섬은 고깔모자이며 섬 위에 빛나는 태양은 에그프라이 같다. 고깔모자나 에그프라이 같은 비유들에는 화자에 의해 부여되는 무거운 의미 같은 것은 아예 씨도 말라 있다. 그것들은 다만 섬과 태양에 대한 그녀의 한량없는 애정만을 가벼운 포즈로 감당해낸다. 이 경쾌한 어휘들은 결국 섬의 것이어서, 섬 바깥의 어둡고 우울한 어휘들을 쉽게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섬 안의 그녀가 스스로를 볼모로 칭하고 섬을 유배지락 칭할 때, 볼모나 유배지 같은 어휘들은 그녀의 시선만을 드러낼 뿐, 정작 섬은 그런 인간의 어휘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섬은 다만 뱃길을 끊어 섬 바깥의 세상을 지울 뿐이다. 그 섬의 적막에 온몸을 맡기면, 그 유배가 얼마나 너그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흔들리는 섬

 하지만 섬과 섬의 풍경은 인간과 인간의 풍경보다 더 인간다운 것이어서, 그녀의 섬과 바다와 물과 바람은 결국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을 '의인화'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시에서 의인화는 생명 없는 것을 생명 있는 것으로 빗대는 '수사적 비유'가 아니라, 애초에 인간 아닌 것들에게 속해있는 풍경을 응시하는 것.
 이제 섬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섬 바깥의 시간을 추문으로 만든다. 섬의 시간은 담장이 넝쿨이 돌담을 기어오르는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목표를 향한 직선적 과정이 아니라, 다만 흡,착,흡,착 만상을 거쳐가는 것 자체이다. 그 속도는 섬 바깥의 시간과는 다른 궤도를 그린다. 그 섬에서, 태엽풀린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계량하려고 하지 않은 채 파도의 잔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나에게 묘하게 읽혔던 것은 마지막 연이다. 이 세 개의 행에는 배와 섬, 신발과 모자, 삶과 죽음이 비교구문으로 잇닿아 있다. 대립을 이룰 것 같지 않은 이 대립항들은, 인간세의 풍경(배와 신발과 삶)과 저 망망한 자연의 풍경(섬과 모자와 죽음)을 담담하게 대비시킨다. 하지만 이 대비 속에서 저 섬의 풍경, 그러니까 인간에 의해 간섭받지 않은 자연들은 다만 안온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배보다 섬이 더 흔들리며, 인간의 신발보다 모자 같은 섬이 더 고단하다. 그리하여 끝내 인간의 삶보다 삶 바깥의 죽음이 더 지루한 것이어서, 섬은 이 모든 것들을 껴안고 내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산시집

 나는 그녀가 스스로 '산시집(山詩集)'이라고 명명한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백 열 일곱편에 달하는 그 시들은 도봉에서 금대봉까지, 백두산 천문봉에서 남해 금산의 창창한 바다에까지 이르러 있다. 그녀는 차라리 산악인인 것이어서, 인간의 발이 닿을 수 있는 이 땅의 육체에 샅샅이 묻혀 본 것이다. 나는 질려버린다. 그녀의 발이 닿은 너른 땅과 그 땅으로부터 길어 올린 언어들은, 게으른 나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폭과 깊이에 잠겨있다.  
 그 시들은 어떤 '자연 시편'들처럼, 인간의 발길에 익숙한 유원지풍의 산과 바다와 들과 절을 찾아 잠시 인간세의 문명과 도시를 개탄하지 않는다. 그것은 '저만치' 피어 있는 자연에 대해 너무 쉽게 정당해져버린, 그래서 편안한 '이데올로기'로 접근하는 '안전한 반성'이 아니다. 그녀는 자연 앞에서 인간의 철학을 늘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근대의 폐해'니 '문명의 폭력'이니 하는 추상화된 지적 관심의 흔적이 그 시들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 시편'이 아니라 다만 '몸의 시편'이 된다.
 나는 떠올린다. 인간세의 바깥에서 인간들과 무관하게 홀로 흔들리는 섬과, 삶의 바깥에서 삶보다 지루한 죽음을 감내하고 있는 바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언어조차 부질없겠지만, 부질없는 것들까지를 껴안고 또 섬은 그곳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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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시인).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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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02년 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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