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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4/12(목) 01:27 (MSIE5.0,Windows98) 211.218.204.6 1024x768
[서평],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발의 피로 쓴 시
                 
                                                    박 형 준 (시인)  


    "길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끝나리라, 길 안에서의 흔들림
    왼쪽으로 굽은 길에서 오른쪽으로 쏠리는 처절한 균형감각"
    --「선자령 가는 길」부분

길은 세상의 은유다. 우리가 일상에서 맞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길'에 이르면, 그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나무의 나이테처럼 무늬를 만든다. 우리는 '무늬'를 상처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세상이 우리에게 준 분노와 핍박을 가라앉힌다. 그러나 가라앉힌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무늬'들은 덧난다.

이향지 시인의 산시집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물'과 '바람'으로 대표되는 산과 길은 은둔과 초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세속의 생존경쟁보다 더한 치열함이 있다. "지도와 랜턴, 나침반과 고도계"를 들고 야간 산행을 하는 50대 후반의 여자. 그에게 산은 '물'과 '바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 '신발'로 왔다. '신발'이 무엇인가. 인생을 일컬어 "신발 몇 켤레 닳게 한 죄"라고 표현한 시인이 있듯, 이향지 시인에게 '신발'이란 고해성사를 하는 곳이다. 컴컴한 높은 산 속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신발을 닳게 하며 시인은 세속에서 겪게 되는 신고(辛苦)를 정화한다. 시인은 신발에 가득한 '땀'을 통해 '물'과 '바람'이라는 정화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정화로 인해 시인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 나무의 뿌리로부터 가장 먼 가지 끝에서 / 떨어지기 전 한 때를 볼 부비며 환하게 흔들려보는 잎새들"(「가을 산으로 간다」)과 같이 그 정화는 일순간의 '환함'이다. 그 '환함'을 얻기 위해서는 "한 나무가 뿌리에서부터 가장 먼 가지 끝까지", 즉 잎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떨어지는 순간까지의 고난이 필요하다. 시인에게 산과 길은 그것을 보게끔 하는 눈(目)이다. 시집 제목, '물'과 '바람'은 바로 고난에서 정화에 이르는 길을 보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륵산아, 나는 너에게 / 털어놓을 추억이 없다 / 너무 많아서 없다 / 멀어서 없다. / 내 아버지의 저수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엔, / 지나간 사람의 향기가 실려 있지 않구나? / 고향아, 그대는 자손 많은 어머니. / 나는 오늘도 그대 밖에서 길 없는 바다를 본다."(「미륵산」부분)

제목 '미륵산'은 시인이 도달하고 싶은 본향이다. 세상에 가득한 욕망이 준 상처를 끌어안고 산으로 떠났지만, 시인은 미륵산에 도달하지 못한다. 고향 부근의 산으로 짐작되는 미륵산에도 시인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줄 "사람의 향기"가 없다. "아버지의 저수지"조차 그를 끌어안지 않기 때문에 그는 고향에 가도 고향 밖에 있다. 그래서 그는 천형으로 부과된 고독을 수없이 많은 신발을 닳게 하며 "그대 밖에서 길 없는 바다"를 보는 심정으로 산 속으로 달려가고 또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만 분의 1 지도 한 장과 불빛 하나로" 그 캄캄한 산과 길을 걷는 그의 '발의 피로 쓴 시'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처절한 순간에서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진경과 맞부딪치게 된다.
나는 인적 없는 산길에서 그를 만나면 말없이 물 한 잔을 건네고 싶다. 조금 더, 아니 영원히 신발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걸으시라고. 그리고 가을의 마지막 햇빛 속에서 떨어지는 잎새들보다 환해지시라고. 그러면 나는 영원히 덧나는 그 상처(시)를 통해 행복을, 정화를 경험하게 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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