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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4/12(목) 01:15 (MSIE5.0,Windows98) 211.218.204.6 1024x768
[올해의 시], '방울토마토'  

말과 사물 / 정한용(문학평론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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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울토마토

         
             이 향 지


    방울토마토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그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나는 방울토마토나무였는데 지금은 없다. 효정이가 먹었다. 경로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그 아이들은 탐스러운 방울토마토였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그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국산
    중량 412g 100g 당 310원 가격 1227원 포장 연월일 00.2.17 판매처 암호 0204437012777 업종 기타식품 판매업

    방울토마토 지금은 빈 용기만 있다. 동글동글 잘 익은 방울토마토, 현대백화점 식품코너에서 다시 만났는데, 새빨간 심장 한 곽을 다시 만났는데, 지금은 찢어진 투명과 빈 용기만 있다. 아침까지 있었는데, 새빨간 심장 네 알이 내 앞에 남아 있었는데, 내가, 방울토마토가, 방울토마토나무가, 한 알 씩, 씻어서, 먹어서, 없다.

          {현대시학}(2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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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

요즘 시들이 난해하고 재미없다고 하는데 다 그런 건 아니다. 일부 젊은 시인의 시에 난삽한 이미지와 복합적인 상징들이 과도하게 쓰여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렵게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도 조금만 시인의 의도를 추적하려고 노력하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가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시의 흐름을 잡아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시가 아무리 어려워도 현대미술이나 현대음악처럼 어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시는 일단 언어라는 낯익은 도구를 표현매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어, 즉 '말'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 언어가 조금 다르게 이용되었을 뿐이다. 독자들의 관심이 아예 처음부터 접근불가라는 선입견에 의해 멀어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여튼 그런 어려운 시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쉽고 감동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 얼마든지 있다. 물론 감동적인 시라고 해서, 소월이나 윤동주의 시를 상상하면 안될 것이다. 시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삶의 조건이 많이 바뀌었으므로, 당연히 시의 모습도 근대 초기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의 시는 당대 우리들의 정직한 모습을 그리면 된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시 역시 저 멀리 떨어진 이상세계를 그리기보다는 현실의 이면을 뒤집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린다.
쉽고 감동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 한둘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나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김춘수, 신경림, 정진규, 이성선, 나태주 등 몇 분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내 나름대로의 목록에는 이향지 시인도 들어 있다. 이견을 갖은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다. 이향지 시인의 근래 시편들은, 우리가 전통적인 방식에서 언급하는 시의 문법과 다르다. 그래서 어렵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일상사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 서술하는 형식, 있는 상황을 그대로 전달할 뿐 시인의 해석이 제거된 시는 우리를 조금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가, 삶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 라고 말해주어야 할 터인데,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시답지 못한 시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 <방울토마토>에서도 그런 시인의 특징이 선연히 드러나는데, 읽으면서 갖게될 몇 가지 선입견을 우선 거두어낼 필요가 있겠다. 이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너무 단순하다. 백화점에 가서 방울토마토 한 박스를 샀는데, 지금 다 먹어서 없다는 것,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되나? 방울토마토가 아니라 오렌지나 사과, 아니 삽겹살이나 돼지족발은 안되는가. 먹거리를 사와서 온가족이 맛있게 먹고, 그 먹음이 진행되면서, 방울토마토가 스스로를 먹는다는, 스스로를 소진한다는 상상이, 과연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말과 사물 사이에 모종의 협약 같은 것이 있어서, 말의 이면에는 어떤 불가해의 음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더욱 시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나는 단언컨대, 이 시는 그냥 일차적 의미, 말이 주는 분위기를 그냥 받아들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그래, 방울토마토가 있었고, 그걸 먹었다. 그것뿐이다. 요즘 흔히 겪을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상황이다. 상징, 메타포, 알레고리, 아이러니 등을 자꾸 거들먹거리면 피곤해진다. 먹었고 없어졌다는 너무나 단순한 사실을 놓고, 무슨 거창한 해몽을 덮어씌우려 해선 안된다. 말의 재미는 의미에서 나오지만, 일차적으로는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말과 사물 사이에 놓인 다리는 의미와 소리가 같이 건너가야 닿을 수 있다. '방울토마토'라는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반복된다. 딸랑딸랑 방울소리처럼 그것은 가족 한사람 한사람을 거쳐가서, 드디어는 스스로의 무게로 스며든다. '먹는다'는 말도 자꾸 반복된다. 이 시에서 방울토마토를 거두어내면, 그 다음은 반복이라는 무늬만 남는다. 그 무늬가 말과 사물 사이의 긴장을 끌어당긴다.
원래 이향지 시인은 말을 재미있게 하는 분이다. 농담과 무게를 잘 버무릴 줄 아는 분이다. 나는 이향지 시인을 지난 여름 처음 만났다. 인터넷 동인회 [빈터]의 같은 회원으로, 지난 여름 대부도에서 수련회를 가졌는데, 이 시인께서 한밤중에 먼길을 달려 거기까지 왔다. 그게 얼굴을 마주한 첫만남이었는데 그 순간부터 다음 날 헤어질 때까지 그의 말에는 항상 즐거운 웃음이 붙어다녔다. 정말 신기한 재주였다. 놀라움이었다. 말이 주는 신선한 즐거움, 그것은 의미 이전, 소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소리가 먼저고 의미는 다음에 현전하는 것 아닌가.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시가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시가 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고, 도덕군자의 준엄한 담론도 아니다.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그것에서 생각의 꼭지를 틀어놓도록 튕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다음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연말이 가깝다. 이향지 시인께서 좁쌀막걸리 한잔 사신다면 기꺼이 달려나갈 참이다.

<<현대시학>>200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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