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봉 동봉 장백정간 분기점에서 백두산 대연지봉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동쪽 물은 모두 두만강으로 흘러간다. 설령봉∼백사봉∼황봉∼아무산 기슭을 파며 시작한 골짜기 이름들은, 박천수, 중강골, 강골, 상안골, 신정수, 한봉수, 큰골물, 작은 박천수, 서계수, 작은 서계수들인데, 이 골짜기의 물들이 합류하여 서두수를 이루고, 서두수는 원봉저수지를 이룬 후, 대홍단군과 무산군 경계에서 두만강 원류와 합류한다. 두만강 원류가 시작되는 대연지봉 동쪽 봉우리에서 약 95km를 흘러온 지점이다.
두만강 원류는 건천(乾川)으로 시작된다.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도 중간중간 사라져서 복류(伏流)하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두만강 원류를 석을수(石乙水)로 간주하는 주장들이 많다. 그러나 석을수는 두만강 원류에 가까운 물줄기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것이지 두만강 원류 그 자체는 아니다. 석을수를 두만강 원류로 보는 주장은, 물줄기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강이 시작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우리가 백두대간을 따라 오면서 확인했듯이, 모든 강의 가장 먼 물줄기는 분수령(分水嶺)상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항상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산기슭과 그 골짜기는 그 아래 강물과 무관하다고 보는 견해는,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두만강의 원류는 신무수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남동쪽으로 5.5km 떨어진 대연지봉 동북릉상의 2,261m봉 동북릉에서 시작된다. 백두대간에서 간도쪽으로 가지를 뻗는 장백산맥 분기점 초입에 해당된다. 신무수는 안신무수와 같이, 처음 12∼13km구간은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마른내다. 그 이후 약 5km구간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지만, 잠깐 물줄기가 끊어졌다가 신무성 3km전에서 다시 솟아 8km정도를 더 흐르면, 석을수·안심수·홍토수(중국쪽 圓池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가 합류한 물을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부터 백두산 천지를 가로 질러온 북·중 국경선이 육지에서 두만강 강심으로 바뀐다. 이 합수 지점에서 51km를 더 흘러가면, 백두대간 북포태산에서 흘러온 소홍단수를 받아들이고, 소홍단수 합수지점으로부터 다시 19km를 흘러가면 서두수(西頭水)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두수는 장백정간 분기점에서부터 우리가 걷는 분수령의 오른쪽 비탈에서 시작한 자잘한 지류들이 모두 합친 큰 물줄기다. 서두수 큰물줄기를 받아들인 두만강은 연면수, 성천수, 보을천, 회령천, 새복천 등을 받아들이며 흐르다가 함경북도 남양과 중국 길림성 도문시 앞에 이르면 북간도 드넓은 벌판을 적시며 흘러온 하이란허(海蘭河)를 받아들인다. 하이란허를 받아들인 두만강은 강폭도 훨씬 넓어지고 강의 흐름도 동북 방향에서 남쪽으로 바뀌게 된다. 장백정간이 끝나는 서수라곳과 러시아의 연해주 사이에서 삼형제도라는 하중도(河中島)를 일구고 동해로 빠져나가는 두만강의 총 길이는 도상거리 약 553.5km에 이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두만강 길이 525km보다 무려 28.5km나 긴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강물의 시작을 그 강의 수계를 가름하는 분수령 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부터 측정해야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두만강의 길이는 우리가 이 분수령을 한 걸음씩 걸어서 통과함으로써 새롭게 인식되고 수정되기를 바란다.
물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젖은 이야기들도 많겠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이 백두대간 분수령(分水嶺) 길은 사방에 물줄기를 두고도 목마른 이리처럼 헐떡이며 가야하는 길. 1,675m봉 북쪽 골짜기 초입에 졸졸 흐르는 석간수가 있어서 어제는 그 옆에 텐트를 쳤다. 그 골짜기 떠난 지 3시간도 안되어 목은 타고, 목이 마를수록 넘어야할 산봉우리는 더 높아 보인다. 아무산도 그렇다. 1,715m봉은 압록강 지류인 농농골 쪽에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겠지만, 두만강 지류인 앞우장연마촌 쪽에서 보면 펑퍼짐한 언덕에 불과하다. 1,705m봉도 평지 같으니 어렵지 않게 넘었다. 그러나 아무산 정상을 스쳐 지날 때부터 나는 또 다시 목마름이 도졌다. 1,702m봉에선 아예 주저앉았고, 앉은 김에 쉬어가자고 점심까지 먹었다.
해발 1,7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13명의 대원이 함께 걷고 먹고 잠자고 배설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모두들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 끼니때가 되면 스스럼없이 소매를 걷어 부치고 앞장서서 물을 떠오고, 밥과 반찬을 끓인다. 먹는 만큼 줄어드는 식량의 무게도 매일 매일 체크해서 안배한다. 누구는 텐트를 지고 누구는 남은 반찬을 지고, 누구는 빈 그릇과 수저를 챙기고, 누구는 금쪽 같이 아껴먹는 간식들과 소줏병을 챙긴다. 침낭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내 침낭은 백은식씨가 배낭 옆구리에 묶어서 지고 가다 해가 지면 돌려주기를 되풀이한다. 고마운 양반들. 우리는 이렇게 백두산 장군봉까지 같이 오를 것이다. 첫 눈이 내리기 전에-.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백두산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아무산 정상에서 둘러보던 백무고원의 장관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해발 1,700m가 가까운 고원에서 나무들은 빽빽하고,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곳에는 사슴이나 양떼를 풀어 먹인다. 내 마음이 가장 아플 때는 가파른 산비탈을 개간하여 심어놓은 곡식들이 깡마른 대궁 위에 부실한 열매를 달고, 버석버석 메말라 있는 풍경들인데, 이쪽 산비탈에선 그런 것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스럽다. 이 드넓은 산록에서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은 이곳 사람들의 주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저 산비탈을 따라 헤매다보면 들쭉과 머루와 다래 같은 산 과일들이 달콤한 과육을 부풀리며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햇볕과 습기와 바람이 적당히 머무는 곳에서는 백년 묵은 산삼이 빨갛게 익은 열매를 달고 뿌리가 굵어있을지도 모른다. 야생 사슴들은 새로 돋은 뿔을 앞세우고 목이 마르면 물가를 찾고,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면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종족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빽빽한 수림 사이로 졸졸 소리내며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산에 기대고 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이 굴뚝마다 하얀 연기를 달고 들판에서 돌아올 식솔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때맞춰 씨뿌리고 때맞춰 추수하며 대대로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고 저 했다.
그러나 이 땅은 수많은 골짜기처럼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땅. 두만강 수계와 장백정간을 껴안고 있는 함경도 지역 대부분은,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 조선이 서기까지 우리 민족의 권역 밖에 있었다. 고구려 계승을 외치며 일어섰던 고려는 고구려의 강토를 수복하려 애썼지만, 거란과 여진의 힘에 밀려 함흥 도련포까지 후퇴한 선에서 천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천리장성은 대부분 청북정맥과 겹친다. 그것은 바로 고려 초 만해도 두만강은 물론 압록강 수계까지도 우리의 권역 밖에 있었다는 증거다. 고려 예종 때 윤관이 일시나마 여진의 기세를 꺾고 구성(九城)을 쌓기는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만큼 고려의 힘은 미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진 세력을 두만강 밖으로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함경도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땅의 생김새와 내력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속내를 깊이 알고 있었기에 수복이 가능했던 것일 게다. 고구려나 발해가 강성하던 때에 비하면 형편없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성계가,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백두산을 우리 권역 안으로 들여놓지 못했더라면 한반도의 모든 산맥이 백두산 하나에 매달리는 '산경표'라는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산경표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고 이 길을 걸을 생각을 했을까? 백두산의 전부가 우리 것은 아니지만, 백두산 최고봉이 우리 쪽에 있어서, 백두대간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백두산을 조종산으로하는 우리의 산경표, 우리 땅의 산줄기 족보도 무용지물을 면하고, 새롭게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나와 우리가 옹색하기 그지없는 지도 위의 길이나마 종주를 계획할 수 있었던 것도 지리산과 백두산을 한 줄기로 잇는 백두대간이 우리 영역 안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남설령을 떠난 지 4일째 되는 저녁. 최가령을 앞두고 있다. 최가령을 건너가서 잠을 잘 것이냐, 최가령 못 미친 곳에서 잠을 잘 것이냐, 남자들은 설왕설래 의견조정들을 하는 중인데, 우리는 둘러앉아 사과를 깎는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서 목표 지점에 가까이 가 있기를 나는 희망하지만, 13인 중 한 사람이라도 간절히 쉬어가고 싶어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남은 길을 위해 더 좋을 것 같다. 1999년 8월 30일 오후 5시 25분. 8인의 남자들이 내린 결론은 최가령을 건너가서 독립동 서쪽 능선에 텐트를 치는 것. 가자, 가자, 1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우리는 두 다리 쭉 뻗고 새로 돋는 별들을 우러르며 누워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1,612m봉을 지나갈 때는 동북쪽으로 눕던 그림자가 바로 내 앞으로 오는 지점까지 왔다. 내 그림자 밟으며 한동안 걸었다. 최가령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1,600m봉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나를 사로잡는 이 환한 빛은 무언가. 고개를 들어보니 곽지봉 산마루에서 저녁 해가 타고 있다. 내겐 태양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수평선을 열고 떠오를 때와,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때. 그러나 첩첩한 산머리를 환한 불길 속으로 몰아넣으며, 지는 해도 아름답다.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내 몸은 어느새 나뭇그늘 속을 통과중이다. 이 제 저 고개마루턱까지만 오르면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는 해를 오래 바라볼 것이다. 두만강 물줄기를 떠다 밥짓는 사람들의 두런거림을 들으며-.
[제29구간], 두만강, 그 시작과 끝을 생각한다 
